티스토리 뷰

글날입니다.

올해부터는 공휴일로 지정이 되어 더욱 뜻깊은 날이 되었습니다.

한글날이라고 언론보도라든지, 트위터에서 보는 얘기들을 보면 늘 레퍼토리가 비슷합니다.

한글날이니까 외래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든지, 언어가 오염되어 가고 있다든지....

뭐 한글은 우수한 언어라든지...

 

일단 한국어와 한글은 다릅니다.

한글은 문자체계고, 한국어는 그 문자체계를 이용하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언어죠.

한글을 사용한다고 해서 꼭 한국어는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북한의 문화어는 한국어와 비슷하기는 하지만 한국어(국어)라고 할 수는 없죠.

한글날이라는 것은 문자체계인 한글의 창제를 기념하는 날이죠.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짜증나니까 우리 식대로 가자! 라는 것이 한글의 창제정신... 일겁니다. 아마도.

 

때문에 외래어를 쓰지 말자는 주장은 엉뚱한 소립니다.

그건 문자체계인 한글이 아니라, 언어 생활인 한국어에 대한 주장인 것이죠.

예를 들자면 Sonata는 외국어지만, 소나타라고 한글로 표기 할 수 있으며, '소나 타'라고 하면 소(cow)나 탄다는 한국어 말장난이 되는 것입니다.

스크린 도어도 한글이고, 안전문도 한글입니다.

스크린 도어는 한글이지만, 동시에 한국어로 분류하면 외래어죠.

이 정도의 기본적인 구분도 못하는 언론보도가 한글날 전후로 아주 넘쳐 흐릅니다.

한심한 일이에요.

 

언어의 사회성

언어에는 사회성이라는 것이 있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언중들의 합의에 의해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사라져갑니다.

예를 들어 요즘 옥떨메 같은 말 전혀 안 쓰죠.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뭐 이런 예전에 유행하던 외모 비하 농담입니다.

대신 요즘 뜨는 "핫"한 말들은 '중2병'이라든지 '신상'이라든지 '오덕'이라든지 '뻐까충' 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들이죠.

또한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해진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언어권의 말이 수입되거나 우리말이 수출되거나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한국어에는 일본에서 받아들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3인칭 '그'와 '그녀' 이렇게 성별을 구별하는 것은 개화기 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퍼뜨린 것이고, "~의"가 다양한 용도로 쓰이게 된 것도 일본의 영향이죠.

우리 말이 수출 되기도 하는데, '총각'은 일본어로 표기되어 일본 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또 영어와 일본어 표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동태 표현은 원래 한국어에서는 드문 것이지만, 요즘 "생각된다" 라는 말, 흔히 볼 수 있죠.

한국어로 제대로 하자면 그냥 "생각한다"라고 적어야 합니다.

 

이렇게 언어는 끊임없이 변하고, 다른 나라의 말도 새롭게 들어옵니다.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미워하면서도 언어는 끊임없이 교류하여 영어와 프랑스어 사이에는 비슷한 단어가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실루엣 같은 단어는 프랑스어에서 온거죠.

그런데 이런 단어가 유입됐다고 영어가 불란서어에 의해 오염됐다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외래어가 몇몇 들어와서 쓰이고 있다해서 한국어가 오염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글날에 극성입니다.

일단 한국어와 한글을 구별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하고 있는 무식한 발언이죠.

오히려 외래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우수성에 감탄해야 할 일입니다.

한글의 우수함 덕에 외국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어의 언어풀(pool)이 더욱 풍부해진다는 생각은 못하는 듯 합니다.

 

언어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독일어에서는 무지개를 다섯가지 색으로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일어가 부족한, 저열한 언어일까요?

한국어에는 성조가 없는데(사투리에는 일부 남아있습니다), 한국어에 성조가 결핍되어 있으니 한국어가 열등한 언어일까요?

 

언어라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회상을 담고 있는 것으로 고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뭐가 더 낫다, 못하다 따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죠.

한글은 잘 만들어진 우수한 문자체계입니다.

하지만 한국어에 다른 나라 말에 없는 요소가 몇몇 있다고 다른 나라 언어보다 우월하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트위터에서 140자 제한이 있는데, 영어로는 몇 마디 못합니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압축해서 표현 할 수 있죠.

그래서 한국어가, 한글이 영어와 알파벹보다 우월 할까요?

표의문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중국어로는 140자면 농담 좀 붙여서 논문도 하나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치자면 한국어는 중국어보다 열등한 언어가 될 것입니다.

 

한글날, 한글이라는 문자체계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겠습니다만, 다른 언어를 깎아내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 덕분에 우리가 풍부한 언어 생활을 만끽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으로 충분할테죠.

 

신고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