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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2016년, 21세기가 된지도 어언 15년이나 흘렀군요.

자, 21세기 한국의 길거리와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라는 것은 어떤 녀석들일까요?

"딱 달라붙는 청바지를 입고, 엉덩이가 일부러 잘 보이도록 반쯤 뒤돌아 선 채로, 비실비실 웃으면서 손짓을 하는 여성"의 사진이나 입간판이 모 통신사 대리점을 빌어 전국을 뒤덮은 적이 있죠.

아직도 꽤 남아있습니다.

겨울이 되니 그 옷차림이 빨갛게(...) 바뀌더군요.

인스타그램에는 "딱히 해롭지도 않아 보이고 공격적이지도 않은, 적당히 보기 좋은 어린 여자애들에게 벗긴 것도 입힌 것도 아닌 애매한 포즈를 취하게 해서 찍은" 사진들이 인기를 얻고 있네요.

저런 사진을 찍고 있는 자는 스스로 예술가라며 행세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관상용 인간


람을 관상용으로 쓰겠다는 걸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쇼 비지니스의 본질도 거기에 있으니까요.

그러나 서브 컬처, 혹은 언더와 오버 그라운드라는 선은 얼렁뚱당 대충 그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 말마따나 "마음 속으로도 간음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드러난 곳에서는 그런 척을 해야 합니다.

인간이 군집을 이루면서 정글이 아닌 사회라는 걸 유지하고 사는 건 이런 예의범절의 힘입니다.

서브 컬처에 남아있어야 할 것들이 껍찔을 뚫고 올라오는 건 천박함이자 퇴행이죠.


무릇 배운 사람이라면 이런 "수동적이고 무해한 관상용 이미지"들이 특정 성별에 집중 투사되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짚을 수 있어야겠죠.

설리의 주체적 자아가 드러난 사진들에 대고 욕을 하면서, 로타 부류의 수동적이며 무해한 "관상용 소녀" 사진에는 열광하는 자들이 들끓습니다.

사진이라는 것은 같은 소재 같은 모델을 가지고도 어떻게 렌즈를 기울이느냐에 따라, 담기는 메시지와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로타가 뭐가 문제냐", "표현의 자유", 같은 말을 지껄이는 건 지적 파산이죠.

로타 부류의 사진에서 그 유해성을 짚어내지도 못하면서 예술이니 사상이니를 논 하는 건 코미디도 아니고 그저 무지에서 오는 비극입니다.


온갖 미디어와 길거리에서 무해한 관상용 소녀만을 비추고, 그것이 비칭인줄도 제대로 모르는 소위 "아재"를 자칭하는 수컷들이 관상용 인간만을 갈구하며 소비하는 이런 판국에, 여자 아이들에게 "넌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단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잘 해 봤자 "pick me up"을 외치면 다행이고, 못하면 "기쎈 년" 쯤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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