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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잘라먹고 자극적인 부분만 적은 위의 트윗이 트위터에서 상당한 RT를 타고 있는데요...

일단 글 적은 계정 자체가 웜톤 짙은 분이군요(역시나).

주장에는 공감하는 바가 있지만 앞뒤가 잘린 부분을 설명하자면...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은 애초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로 출품된 것입니다.


1917년 뉴욕, 그랜드센트럴 갤러리에서 주최한 공모전의 조건은 출품비만 내면 누구든 출품 할 수 있다, 였습니다.

미국은 당시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자국의 예술 자본 때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만의 예술 자본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계속 되었는데, 저 '독립전시회'의 목적도 대저 그러했습니다.

이름에서부터 독립... 미국 명절로 독립기념일이라는 것이 있죠.

잭슨 폴락 같은 양반들이 좀 지나치게 뜰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미국 안의 예술 자본 확보를 위한 의도된 움직임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출품된 작품 들 중 하나가 바로 뒤샹의 저 '샘'입니다.

변기는 익명으로 출품되었고, 변기는 기성품 변기 그대로 였으며 'R. Mutt 1917'이라는 서명만 달랑 적혀 있는 상태였습니다.

새로운 독립 미술을 하겠다던... 주최 측은 불쾌해하면서 해당 작품의 전시를 거부합니다.

뒤샹은 이 주최 측 심사위원 중 하나였으며, 익명 출품된 변기를 옹호하는 심사평을 냅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 마냥, 저 Mutt라는 사람이 신선한 발상을 했으며 진짜 예술가다, 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논쟁을 촉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뒤샹은 다른 예술가들과 함께 관련 기고나 토론(이라기보다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어그로, 트롤링?)을 이어갔습니다.

지금에야 저 변기가 다다이즘이라는 사조를 열었다고 평가받으며 미술사 교과서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딱 100년전이죠) 미술관에 변기가 걸려있는 것이 여러사람들에게 불쾌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투닥토닥이 더 이어지는데 다 적자면 길어지니 이쯤하도록 하겠습니다.


, 혹은 싸인 적힌 변기에 대한 아이디어가 뒤샹 주변의 여성들에게서 나온 것이고, 뒤샹이 그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주장은 여러가지 가설 중 하나입니다.

사실이라고 단언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애초에 저 변기는 논쟁과 함께 교차텍스트성을 의도하고 출품한 것이고, 지금에야 용어도 정립이 되어 있고 사조로 인정받아서 전문가 아니더라도 누가나 체계적인 설명을 읊을 수 있습니다.

미술 교과서에도 나올 정도니까요.

하지만 당시로서는 격론이 벌어졌던 대상이었고, 뒤샹은 그것을 의도하고 출품 하였으며, 따라서 뒤샹 본인 역시 작품에 대해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며 논쟁을 더 부추겼습니다.

샘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고 토론을 벌이면서 뒤샹은 늘 말을 바꾸었는데, 뒤샹이 저 변기를 샀다고 주장하는 가게에는 실제 판매 기록이 없다든지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또한 'R. Mutt 1917' 이라는 사인에 대해서도 여러 가설이 존재하고, 그 가설들은 모조리 추측입니다.

뒤샹이 의도적으로 작품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하지 않거나, 계속 말을 바꾸고, 애매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에 추측만 있을 뿐입니다.

그 가설 중 하나가 여성 동료의 아이디어를 갈취 했다는 이론인 거죠.


뒤샹은 여장을 하고 사진을 찍거나, '모나리자'를 모욕하는 등, 기성 질서나 '미술관 안의 미술'에 대한 반감을 곧잘 드러내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었더라도, 다른 여성의 아이디어를 갈취했었을 수 있죠.


러나 여성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가설을 가능성이 낮다고 그냥 지나쳐 버릴 수는 없는 것이, 미술사에서 여성 착취는 동전의 양면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예술가 곁에는 늘 착취 당하는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또 흉흉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요.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관련 영화 제작에 수없이 참여했고, 리버럴 진영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로 알려진 하비 웨인스타인이 실제로는 성폭력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나왔습니다.


할리우드 거물의 두 얼굴…페미니즘 옹호하며 30년간 성폭력 [중앙일보 / 링크]


잠깐 위에서 언급했던 잭슨 폴락 같은 경우에는...


잭슨 폴락. 일대기가 영화로 나오기도 했죠. 액션페인팅이랍시고 미국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양반입니다만.


이 양반도 예술가 아니랄까봐 유명세를 탄 다음에는 여성 편력이 대단했고, 여성 두 명을 같이 태운 채로 음주운전에 과속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피카소는 '공식적'으로만 7명의 여성편력이 있었고, 7명 중 두 명은 자살,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한 명은 요절 했습니다.

클림트의 별명은 "빈의 카사노바"였고, 사생아만 14명(뭐 더 있을지도 모르죠)을 남겼습니다.

더군다나 클림트는 황금이나 사파이어 같은 보석을 갈아 물감 삼아 그림을 그렸는데, 당연히 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돈은 연인이자 후원자의 아내(아델레 블로흐 바우어)가 없었으면 마련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만...

그러고도 열심히 여성을 꼬시고 다녔죠.

로뎅과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는 좀 많이 윤색된 영화로도 나와서 꽤나 유명해졌습니다만...

사실 알고보면 로뎅이 일방적으로 까미유 끌로델을 착취하는 관계였으며, 까미유의 작품을 가로채서 로뎅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많습니다.

고갱은 처자식이 있었지만 사창가를 전전하다가 타히티로 건너갔고, 거기서 자신의 매독과 성병을 타히티의 미성년자 10대 여성들에게 옮겼습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도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는 프랑스 본토에서 엄하게 처벌받는 범죄였고요.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서 일일히 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쿠보타 시게코. 1965년에 보지로 그림을 그려서 남성 위주의 미술계를 조롱하듯 패러디 했던 위대한 예술가. 물론 한국에서는 '백남준의 아내' 정도로만 알려져... 아니 백남준은 알지만 이 분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죠. 이렇게 여성의 이름은 현시대에서조차, 배우자에게 가려지거나 아예 삭제됩니다. 옛날에는 더 했겠죠.


농반 진반으로, 국문학과 나온 한남이랑 사귀었다가 헤어지면 그 자식의 시가 되고,

음악을 배운 놈과 헤어지면 그 자식이 쓴 노래 가사가 된다는 얘기가 있죠.

아니 뭐 당장 유명했던... 그 "그 어느날 너와 내가 심하게 다툰 그 이후로 너와 내 친구는~"


"예술가의 뮤즈"라는 게 결국 착취-피착취 관계라는 것은 그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남성 예술가와 성취가 결국 주변의 여성을 착취하거나, 그 아이디어를 갈취해서 이뤄진 것이란 사실이 최근들어 속속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뒤샹의 변기 역시도, 그런 의혹이 전부터 있었던 것이고요.

작품의 배경에 깔려있는 여성혐오나 여성 착취의 정황을 탐구하는 것은 결코 의미없는 일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 처럼 치부되었던 것들도 현대에 와서는 재평가가 되어야만 합니다.

특히나 뒤샹이 냈다고 알려진 저 변기의 뒷 얘기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교차텍스트성을 의도했으므로 그 배경에 대한 여러가지 연구가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낮은 가설'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오히려 작가의 의도에도 부합하지 않고, 위험하고 오만해 보입니다.

이제는 마땅히, 위대한 예술적 성취가 있었지만, 그 뒤에는 여성에 대한 가혹한 착취가 있었다는 사실을 같이 적어야 합니다.

시대는 바뀌고 윤리적 기준 역시 바뀌는 것이니까요.

21세기에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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