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O ONE LEFT BEHIND”
“살았든 죽었든, 모두 데리고 돌아간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입니다.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많은 병사들이 시내 곳곳에 고립됩니다.
고생 끝에 기지로 생환한 레인저(+델타포스) 대원들은 방금 도망쳐 나왔던 지옥 같은 모가디슈 시내로 되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부상당한 레인저 대원은 “저 지옥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며 항의하지만, 고참 부사관이 외칩니다.
“Doesn’t matter, no one gets left behind, you know that!”
살았든 죽었든, 죽었다면 그 시체라도 들쳐업고 돌아온다는, “No one left behind”는 미군의 자부심입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들을 반드시 집(미국 본토)으로 데리고 돌아오겠다는 것.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전사자들의 시체를 챙겨오는 건 사실 살아있는 사람들 보기 좋으라고 하는 일입니다.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었으니 그 죽음 헛되지 않으리”라는 착각이라도 안겨주지 않으면 누구도 입대하려 하지 않겠죠.
그런데… 그 “누구도 입대하려 하지 않을만한” 군대가 실제로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국군입니다.
베트남 전쟁, 9년, 35만명
1964년, 미국은 베트남 통킹만에서 자국 구축함(USS Maddox; DD-731)이 공격 당했다며 베트남을 침공합니다.
10년 전 15개국이 직접 참전하여 남한을 도왔던 6.25 때와는 달리, 대부분의 “자유”진영 국가들은 이 명분도 대의도 실리마저도 없는 전쟁에의 참전을 거부(한국 포함 단 5개국만이 파병)하였습니다.
국제 여론이 지극히 나쁜데다 국내에서도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가 극심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파병을 결정했고, 장장 9년여에 걸쳐 연인원 35만여명이 전쟁이라는 진흙탕에 처박혔습니다.
베트남 전쟁 9년 동안 연인원 35만명의 국군 장병들이 크고 작은 작전 50만여회를 치렀습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북베트남,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결국 승리하면서, 미국과 국군은 숱한 사상자와 함께 베트남 땅에서 철수합니다.
철수 직후 한국 국방부는 전사자를 3,844명으로 발표합니다.
그리고 포로는 0명.
…?
…농담이나 잘못 쓴 숫자가 아닙니다.
9년 동안 치른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간 국군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9년 50만회 작전 중 포로가 단 한 명도 없었다니, 얼토당토 않은 거짓말이었죠.

이세호 주월 한국군사령관은 철군 후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는 각하(쿠테타 수괴이자 독재자인 박정희를 지칭)와 국민 여러분의 지원과 격려로 용감히 싸웠고, 그 결과 한국군 포로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라고 밝힙니다.
“포로는 없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라, 북베트남군에 사로잡혀 베트남 땅에 남게 된 사람들은 모두 일괄 사망 내지는 실종으로 처리됩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통일된 베트남 정부(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가 미국 포로를 석방하면서 한국인 포로 한 명을 같이 석방하겠다고 발표합니다.
한국 정부는 이 발표를 전해듣고 우왕좌왕합니다.
위대하신 박정희 각하의 말씀에 의하면 포로는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아니 난데없는 한국인 포로?
한국 정부는 풀려난다는 한국인 포로가 누구인지 그 신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데려올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등의 추태를 보였습니다.
그 포로는 바로 당시 국군 맹호부대 소속 유종철 일병.
전쟁 말기, 북베트남의 대규모 공세(안케패스 전투) 와중에 포로가 되어 11개월 동안 억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국립묘지에 묘비까지 세워진(누구인지도 모르는 신원 미상의 유해를 대신 묻었습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유종철 일병은 기적같이 돌아옵니다.
보통 전쟁 포로가 생환하면 환영 행사도 하고, 살아 돌아왔다는 기쁜 소식을 가족들에게도 알려주고 하는 게 상식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 정권은 유종철 씨의 생환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NO POW(Prisoner Of War)”를 반박하듯 풀려난 유종철 일병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체포당하듯 국군병원으로 끌려갔고 유가족(?)들은 생존 사실을 전달 받지 못했습니다.
그가 박정희 정권의 “포로는 없다”는 거짓말에 대한 살아있는 반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망 처리된 유종철 씨의 주민등록은 “부활”절차를 거쳐 대한민국 1호 “부활” 사례로 남았습니다.
유종철 씨는 국가로부터 어떤 사죄나 배상도 받지 못했지만, 그나마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습니다.
국가가 버린 참전 용사들
미국은 포로 교환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인 포로들의 존재를 알게되고, 명단도 입수합니다.
1972년 파리 평화 회의 당시, 미국은 이 자료를 한국 정부에 알리고 답변을 요청합니다.
그래도 미국은 약간의 상식(물론 온전한 상식을 갖추고 있었다면 베트남 침략 같은 건 안 했겠죠)은 있어서, 같이 싸워준 동맹국 군인들을 외면 할 수 없었으니 한국에 알렸던 것인데…
한국측 답변이 가관이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유신 정권은 “한국인 포로는 없고, 따라서 포로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딱 잘라 버렸고, 미국도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국적이 다른 한국인 포로들에 대한 구명 조치는 어려웠죠.
이 시점에서 베트남에 남은 국군 포로들을 구출 할 수 있는 외교적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립니다.
“대한민국”이, 용감하게 싸웠던 국군 포로들을 쓰레기마냥 내다 버린겁니다.

북한은 당시 같은 공산국가(주체사상은 공산주의와 많-이 다릅니다만 아무튼…)라며 북베트남을 지원했습니다.
당시 국군은 “베트콩들이 설마 한국말을 알아듣겠냐”면서 군사 기밀까지도 무전으로 거리낌없이 주고 받았는데, 북한에서 온 요원들은 그 통신을 감청해서 고스란히 북베트남군에 전했습니다.
작게는 무전기 주파수를 알아내어 통신을 방해하거나, 크게는 작전 계획을 가로채는 등 북한이 파병한 요원들은 북베트남 편에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북한은 국군 포로들을 가로챘습니다.
한국 정부가 배째라고 나오면서 한국인 포로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심하던 베트남 정부에게, 북한이 돈 줄테니 남한 포로들을 넘기라고 한 것이죠.
전쟁 포로(물론 한국 정부는 무시했지만 국제법상 포로 신분)에 대한 인신매매라니, 말도 안 되는 비인도적 행위였지만 북한이 언제 그런거 따지는 집단이었습니까…
한국 정부는 포로따위 없다고 뻐팅기고 앉았고, 돈까지 주겠다고 하니 베트남 정부도 뭐 마다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베트남에 억류되어 있던 국군 포로들은 캄보디아를 거쳐 북한으로 끌려갑니다.
이렇게 북한으로 끌려간 참전 용사들은 북한의 체제 선전 수단으로 이용 당했고, 남한 정부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여기서 또다시 박정희 정권의 머저리 짓이 벌어지는데, 죄라고는 국가의 부름에 응해 용감히 싸우는 것 밖에 없었던 국군 포로들을,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이유 하나로 빨갱이라고 공격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베트남에 낙오된 탈영병이나 민간인들이 북한으로 자진 월북하여 남한을 상대로 공갈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해서 용감하게 싸웠던 참전 군인들은 대한민국에게 버려지는 것도 모자라 빨갱이 딱지까지 붙게 되었습니다.
주월한국군 실종자는 전투 중에 발생한 행방불명자가 아니고 모두 자의에 의한 탈영자로서 일부는 북한에서 방송한 사실이 있고, 나머지는 범법도주자이므로 주월사령부는 이들을 포로로 간주하지 않고 있으며, 송환 요청을 제기할 대상이 되지 못한다.
1973년 3월27일 국무회의, 주월대사 보고.
국가에게 버려진 피해자들 중 한 명, 안학수 하사는 북한으로 끌려가 대남 선전 방송을 녹음하는 처지가 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안학수 하사는 대남 선전 방송 출연을 거부하며 저항 하였고, 그 과정에서 큰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정권은 안학수 하사를 빨갱이로 규정 했지만,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안학수 하사는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으로 가려 하였으나, 실패하여 결국 처형 당했다고 합니다.
2009년 4월28일에 가서야 통일부 납북자심의위원회에서 안학수 하사를 “탈영병”이 아닌 “납북자”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안학수 하사의 직계 가족들이 모두 사망하여 국가유공자로 등록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안학수 하사 앞으로 나온 전사자 보상금은… 만원도 안 되는 푼돈이었습니다.
캄보디아(호치민 루트)를 통해 북한으로 끌려가다가 가까스로 탈출, 캄보디아에서 간첩 혐의로 복역 하는 등의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박정환 중위의 말입니다.
내가 포로가 된 뒤 탈출을 시도하면서, 살아 돌아가면 환영을 받으려나 바보가 되려나 고민이 많았다. 캄보디아에서 감옥 생활 중 재판받고 실형을 다 산 뒤 고국에 돌아가면 어떤 대접을 해줄지 자신이 없었다. 미군은 포로가 되어도 조국이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국군 포로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걱정했다. 그 와중에 자신감을 잃고 속수무책으로 북한에 끌려간 포로도 상당수였을 것이다.
박정환 중위, 월남전 당시 태권도 교관으로 파병.

박정희 정권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월남전 참전 용사들의 보상 및 배상 청구가 빗발치자, 박정희 유신 정권은 헌법에 이중 배상 금지라는 희대의 독소 조항을 박아 넣습니다.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받은 손해에 대하여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국가 또는 공공단체에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
남조선 헌법 제29조 2항.
국가가 주는 푼돈이나 받아먹고 어서 썩 꺼지라는 뜻입니다.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우는 커녕, 그들이 내민 청구서를 눈 앞에서 짝짝 찢어버리는 짓을 벌였는데, 그걸 또 법 개정을 할 수 없도록 헌법에 넣어 버렸습니다.
사탄도 울고 가겠네요.
이중 배상 금지는 헌법 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없애거나 고치려면 국민 투표를 통한 개헌이 필요합니다.
국민 투표는 둘째치고, 헌법 개정안 합의 과정이 국회에서 먼저 필요한데, 바이든을 날렸다느니 청와대가 감청을 당했는데 그걸 따지면 이적 행위라느니 하는 한국 정치인들 수준에서 저게 되겠습니까…

“대한민국” 군대의 이런 행태는 21세기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이중 배상 금지 조항은 여전히 살아있고, 군인들의 헌신을 헌신짝보다도 못하게 여기는 풍조는 여전합니다.
김정원·하재헌 두 군인은 철책 순찰 임무 중 북한군의 목함지회에 신체의 일부를 잃는 중상을 당합니다.
육군에서 치료비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자비를 들여 치료 해야 했음은 물론, 육군에서는 부상 당한 두 군인의 가족에게 치료비를 내놓으라고 요구 했습니다.

여기서 그치면 대한민국 국방부가 아니죠.
무려 2억을 들인 발목 모양 동상을 임진각에 “평화의 발”이라며 세웁니다.
사고로 발목을 잃은 군인들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저 동상 만들 돈을 사고를 당한 군인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보다 상식적인 대응 아닐까요?
한국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집단입니다.
군대에서 다치면 자비로 치료해야 하고, 죽으면 말 그대로 개죽음일 뿐입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가면 월북한 빨갱이라고 날조하며, 그렇다고 살아 돌아온 군인을 예우하느냐?
이중 배상 금지로 인해 푼돈이나 받으면 다행입니다.
한국 군대에는 입대하는 거 아닙니다.
마동석(본명 Don Lee)이나 유승준(본명 Steven Lee)처럼 미국으로 도망가든, 발치몽처럼 이빨을 빼든, 무슨 방법이 되었든 입대는 피하는 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