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가 삽질을 참 많이도 했는데, 그 중 큰 거 두 개를 뽑아본다면 역시 자동차와 카메라겠습니다.
자동차는 단지 이건희의 개인적 관심 때문(…회장님의 고상한 취미)에 삼성 그룹에 매달린 혹이었습니다.
1992년 삼성자동차는 트럭을 시작으로 자동차 시장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7년 후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지면서 문자 그대로 쫄딱! 망하게 됩니다.
이후 르노에서 삼성자동차의 자산을 인수하면서 르노삼성이라는 브랜드로 사업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르노 측이 삼성 브랜드 사용 계약을 연장 하지 않았기 때문에, 브랜드로나마 남았던 삼성자동차의 명맥은 완전히 끊깁니다.
삼성카드 측은 가지고 있는 약 13%의 르노코리아 지분도 매각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건희는 자동차 비슷하게 카메라에 대해서도 꽤나 집착을 보였습니다.
삼성은 80년대 미놀타 X-300 완제품을 수입해서 판매했으며, 하이매틱 시리즈도 제휴 생산 했습니다.
동시기 아남정밀도 니콘과의 합작으로 FM2 등을 생산하기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X-300, 하이매틱, FM2는 요즘도 구하기 쉬운 편입니다.
저 시대에 “장롱 카메라”라고 하면 대저 저 기종 들 중 하나였죠.

TLR 방식 구조로 작은 크기지만 중형 필름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물론 프로들도 많이 썼습니다.
Marilyn Monroe with a Rolleiflex film camera in Banff, Canada. Taken in 1953 by American photographer John Vachon.
이병철이 죽고 이건희가 그룹을 세습 한 후 10년도 채 안 지난 1995년…
삼성은 독일 롤라이를 인수합니다.
롤라이는 1920년대부터 사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유서깊은 카메라 전문 기업인데,
이걸 극동아시아의 이름모를 양아치 기업 하나가 챱챱 처먹은거죠.
이건희의 카메라 덕후 기질과 롤라이라는 독일 SSS등급 브랜드가 만나 멋진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꽤 있었지만,
삼성은 역시나 삼성 했습니다.
큰 시너지는 내지 못했고, 겨우 4년 만인 1999년 삼성은 롤라이를 팔아버립니다.
삼성은 이후 자체 브랜드 케녹스(필름 카메라), 디지맥스(디지털 카메라)로 카메라들을 만들어 팔다가 펜탁스와 제휴합니다.
다만 펜탁스는 캐논 니콘 심지어 올림푸스에게도 밀리는 만년 3류도 아닌 4류 브랜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판매량이 꽤 나오긴 했었습니다.

펜탁스가 잘 나가진 못해도 기본기는 충실한 회사였던 만큼 카메라로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건희가 팔팔 했을 때는 카메라 사업에 꽤나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9년에는 삼성 테크윈에서 카메라 사업부를 분사시켰다가, 바로 다음 해 삼성전자로 합병 하여 직접 챙겼습니다.
2012년에는 “3년 안에 카메라 세계 1위 달성 방안을 마련하라”는 둥의 지시를 내리며, 카메라에 대한 애착을 다시금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14년 5월, 이건희가 저녁밥 먹고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왕위를 계승한 이재용은 상왕의 고상한 취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자마자, 같은 해 광학 기술을 가지고 있던 삼성 테크윈을 한화에 팔아넘깁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 내 카메라 사업부 연구 개발 및 마케팅 등도 모조리 중단됩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2014년에는 국내 카메라 시장 1위”, “2015년에는 세계 시장에서 캐논 니콘을 제치겠다”는 소리도 곧잘 했습니다.
때문에 이런 급작스러운 선회는 명백히 선대 회장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스마트폰에 밀려 쪼그라들며, 결과적으로 카메라에서 손을 뗀 삼성전자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올바른 선택이었지만, 당시 국산품 삼성 카메라가 없어진다는 걸 아쉬워 하는 이들도 꽤나 있었습니다.펜탁스 빠돌이들도 아쉬워했다 카더라…

삼성의 “무노조 정책”으로 노조가 없었다가,
부랴부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하고 반대 투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없던 노조 발 등에 불 떨어지니 그제서야 만들어서 뭐가 잘 됐을리가.
평소에 잘 합시다 평소에…
관련기사: [매일노동뉴스]
롤라이가 잠시 삼성 밑에 있었기 때문에 삼성 얘기를 좀 적어봤습니다.
덕분에 서설이 좀 길었네요.
1920년대부터 카메라를 만들어오면서, 1930년대 ‘롤라이플렉스’라는 작은 크기에 120(중형) 필름을 쓰는 괴물 같은 카메라를 만들어 전 세계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아오던 브랜드가 바로 독일 ‘롤라이’입니다.
중형 카메라인 롤라이플렉스도 큰 인기였지만, 롤라이가 만든 135(35mm) 카메라 “롤라이 35″시리즈도 아주 잘 팔렸습니다.
135 판형을 사용하며 HFT 코팅(Carl Zeiss T* 코팅의 OEM 버전)까지 발라놓은 최고급 광학계가 들어가 있는 롤라이 35.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으로 탄생한 카메라였습니다.

하프 카메라라고 해서, 135 필름 한 컷의 절반만을 사용하는 독특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카메라 자체의 크기를 크게 줄일 수 있었고,
필름 한 통을 두 배로 쓸 수 있었으므로 여행용 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사진: Ashley Pomeroy
1962년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 비르진(Wirgin)의 연구원이었던 하인츠 바스케(Heinz Waaske)는 올림푸스 펜 같은 작은 카메라를 만들 수 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그린 스케치를 바탕으로 회사 실험실에서 롤라이 35의 초기형을 직접 만들어 보게 됩니다.
렌즈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넣어두고, 쓸 때만 잡아 빼는 혁신적인 구조였습니다.
바스케는 비르진의 사장 하인리히 비르진(Heinrich Wirgin)에게 이 프로토타입을 보여주었지만,
돌아온 것은 회사 기물을 멋대로 사용한 것에 대한 꾸중뿐이었다고 합니다(😭).
일하던 회사(비르진은 얼마안가 카메라 사업을 접게됩니다)에서 퇴짜맞은 바스케는 라이카와 코닥을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설계상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너무 작아서 셔터 유니트 등을 넣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죠.
지나치게 시대를 앞선 대중적이지 못한 컨셉도 문제였습니다.
당시 코닥은 철저하게 최종 소비자의 편의를 우선시하는 개발/마케팅으로 일관 하였습니다.
이렇게 라이카와 코닥에서 딱지를 맞은 다음,
마지막으로 찾아간 롤라이가 바스케의 아이디어를 받아주게 됩니다.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바로 롤라이 35입니다.

싱가폴산 롤라이 35 S.
빨강 셔터 릴리즈 버튼과 전용 필터를 장착한 모습입니다.
1966년 나온 롤라이 35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롤라이 35는 하프판 카메라와는 달리 135 필름 전체를 사용하여 뛰어난 화질을 유지하면서도,
크기는 되려 하프 카메라보다 작았습니다.
단지 선진적 설계에만 그치지 않고, 부품과 품질에도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당대 최고를 자랑하던 부품들을 총동원 했는데,
칼 차이스(Carl Zeiss) Tessar 40mm 렌즈, 컴퍼(Compur) 셔터, 고센(Gossen) 노출계 등…
매우 호화로운 사양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가격이 끔찍하게 비싸졌습니다.

비싼 것도 문제였지만 독일 공장에서는 생산량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결국 롤라이는 싱가포르에 롤라이 35 공장을 세웁니다.
싱가포르에서는 부품을 조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가까운(그리고 당시 정밀 부품을 제조 할 수 있던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던) 일본에서 수입하게 됩니다.
칼 차이스 본사에서 사오던 오리지널 테사 렌즈 대신,
라이센스를 받아 롤라이 자체 생산품(Made by Rollei 라고 각인되어 있습니다)으로 바꾸었고,
셔터 유니트는 일제 코팔(Copal), 노출계는 니세이(Nissei)에서 받아 왔습니다.
싱가포르의 낮은 임금과 부품 단가 절감으로 롤라이 35 가격은 꽤 저렴해졌습니다.
저렴한 가격과 절절한 공급량을 바탕으로 롤라이 35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물론 영원한 일인자는 없죠.
미국 코닥과 일제 똑딱이들의 공세에 밀려 독일 광학 업계는 침체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1981년 싱가포르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롤라이 35는 20여종의 바리에이션을 남기고 약 20년 역사 끝에 생산이 종료됩니다.

Sonnar의 앞글자를 따서 이 버전을 ’35 S’라고 부릅니다.
이후 Tessar를 붙인 버전은 ’35 T’라고 구별해서 부르게 됩니다.
싱가포르에서 생산 했던 롤라이 35는 부품 품질 저하와 조잡한 마감으로 인해 평은 좋지 않습니다.
비전문가가 대충 보아도 싱가폴산은 독일제에 비해 상당히 조잡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
그래서 독일제 롤라이 35에는 프리미엄이 붙어있습니다.
독일산 롤라이 35는 싱가폴에서 만든 롤라이 35의 두 배 정도(50만원대) 하는 가격에 거래됩니다.
35 S는 조리개값이 f/2.8로 사양은 더 좋지만, 대부분이 싱가폴산입니다.
테사 렌즈가 붙어있지만 이름에 ‘T’가 붙어있지 않은 초기형(독일제 오리지널 Carl Zeiss Tessar 렌즈)이 요즘도 제일 비쌉니다.
하지만 수집이 아닌 실제 사진을 찍기 위한 용도라면, 저렴하고 조리개값도 빠른 35 S 역시 좋은 선택입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