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과 야만이 판을 치던 상고 시절, Xbox라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Microsoft가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끼어들어보겠답시고 내놓은 기계입니다.
당시 Sony와 Nintendo가 양분하던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기업이기는 하지만, 그런 레드 오션에 뛰어들겠다는 결정은 꽤나 무리수였고…
더군다나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게임기 Xbox는 정말 X같은 크기와 X같은 디자인을 자랑했습니다.
아기자기하게 생긴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기계들에 비해 너무 크고 못생겨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Dead or Alive Ultimate 소프트가 포함되어 있는 한정판.

DoA의 간판 캐릭터 ‘카스미’ 등신대 다키마쿠라도 하나 껴 줬습니다.
***제가 산 거 아닙니다.***
사진 왼쪽을 보면 검은색 Xbox도 보입니다.
옆에 세워져있는 플레이스테이션 2랑 비교하면 정말 못생기고 커다란 기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못생긴 디자인과 커다란 크기, 나쁜 쪽으로 미국적인 어프로치 때문에 이게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습니다만…
동시 발매작이었던 HALO가 북미에서 대박을 치면서, Xbox는 살아남았습니다.
지금은 헤일로 시리즈 및 주인공 마스터 치프가 문화 아이콘 대접을 받고 있으니, 역시 대기업의 뚝심을 우습게 보면 안 되겠네요.
물론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의 고향 일본에서는 아예 없는 물건 취급을 받았는데, 이는 요즘도 비슷합니다.
Xbox는 애초 목표가 거실마다 또 다른 윈도우 PC를 놓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부 구조와 부품이 PC와 흡사 했습니다.
개발 도구 역시 윈도우와 흡사해서, 거짓말 좀 붙여 Xbox용 게임은 클릭 한 번만 하면 윈도우로 포팅 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마케팅 때문에 Xbox only 딱지 붙은 게임들은 타기종으로의 이식이 없거나 매우 늦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윈도우와 Xbox로 같은 게임을 즐길 수는 없었죠.
요즘은 Xbox Gamepass 가입하면 PC나 스마트 기기에서 Xbox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PC와 플레이스테이션, Xbox 모든 플랫폼에서 동시발매하는 게임들이 대세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능 떨어지는 닌텐도 스위치로도 동시 발매(내지는 순차 발매)하는 제작사들이 많아졌습니다.
또 요즘 나오는 Xbox 게임 패드는 윈도우에서도 잘 작동하기 때문에, Xbox는 없어도 Xbox용 게임 패드는 가지고 있는 PC 게이머들도 꽤 많습니다.

용량은 약 10GB 정도. Seagate OEM.



경쟁 기종에서는 없(거나 꽤 큰 돈을 들여야 장착 할 수 있고, 장착해도 쓸모 전혀 없)는 이더넷 포트와 HDD를 기본 사양으로 채택한 기계였습니다.
일본 회사들이 보수적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만, 때문에 Xbox가 성능이나 편의성에서 경쟁 기종들에 비해 우월했습니다.
DVD 광학 미디어는 워낙에 느렸기 때문에, HDD로 게임을 빠르게 로딩 할 수 있었죠.
들어있는 HDD는 Seagate와 Western Digital 두 곳에서 OEM 납품한 것으로, 시게이트는 8GB, 웬디는 10GB로 용량이 달랐습니다.
물리적 용량은 달랐지만 Xbox 내장 OS에서는 같은 용량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작동 차이는 없었습니다.
이 HDD를 좀 더 용량이 큰 것으로 바꾸고, 원래 들어있는 40선 PATA 케이블도 80선으로 교체하면 게임 로딩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사실 순정 40라인 PATA 케이블만 80라인 짜리로 바꿔줘도 빨라집니다.
원가절감 때문에 40선 짜리를 쓴 것 같기는 한데…
플레이 스테이션 2가 저렴한 DVD 플레이어(발매 당시 DVD 재생 할 수 있는 기계 중 가장 저렴했습니다)로 크게 어필 했듯, Xbox 역시 저렴하고 성능 좋은 베어본 PC(비스무리한 무언가)다보니 개조를 해서 미디어 플레이어로 써먹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게임은 안 하고 Xbox를 TV와 연결하여 DVD나 영화보는 용도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고, 용산에 그런 개조를 해주는 업체들도 생겨났습니다.
Xbox에 고성능 HDD를 붙인 다음에는 적출한 10GB 정도 용량의 순정 HDD가 하나 남죠.
이게 본격적으로 쓰기에는 애매한 용량이지만, 버리기에는 또 아깝고.
FATX라는 고유 형식으로 포맷되어 있었기 때문에 PC에 그대로 사용 할 수는 없었지만, 별도로 포맷을 해주면 컴퓨터에 붙여서 보조 HDD로 활용 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만원 이만원 짜리 싸구려 SD카드도 256GB인 시대지만, 저 때는 10GB면 그래도 보조용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시 시장의 주류가 40GB HDD였던 시절입니다.

이것은 가상의 세로 스탠드… Xbox가 크다는 걸 놀려먹으려고 만든었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