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서 지난 2022년 9월 25일에 낸 기사인, “[손석우의 바람] 후지와라 효과“에 의하면,
“후지와라 효과”라는 말은 학계에서도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다수 언론에서 언급한 후지와라 효과. 내심 불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기상학계의 전문용어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 표현. 그런데 정작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용어. 학계에서도 ‘태풍 간 상호작용’이라는 더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 누구도 후지와라 효과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한겨레 신문, “[손석우의 바람] 후지와라 효과“, 손석우, 2022년 9월 25일.
그러니까 후지와라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모든 공직에서 퇴출당한다. 물론 개인적인 연구를 계속했지만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 기상청에서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후지와라의 이론을 사용하고 있다.
한겨레 신문, “[손석우의 바람] 후지와라 효과“, 손석우, 2022년 9월 25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경험한 나라에서 일본 전범을 기억하며 태풍을 설명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따름이다.
후지와라 효과라는 것은, 태풍 두 개가 가까이 있을 경우 두 태풍이 서로 간섭을 일으켜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서울대 지구환경학과교수 손석우 박사는 후지와라 효과(藤原の効果)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물론, 학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말이며, 이보다 보편적인 ‘태풍 간 상호작용’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 상무부 산하 연구소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에서 지난 2001년 당시 내었던, [허리케인 아이리스에 대한 예비 보고서] 중 일부입니다.
The change in heading was probably a consequence of a Fujiwhara interaction between Iris and Humberto located about 750 nmi to the east–Humberto had developed from a depression on the 22nd to a 95-knot hurricane by late on the 24th.
NOAA, “Hurricane Iris Preliminary Report“, Edward N. Rappaport, 2001.
“학계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전문 연구 기관 리포트에서 후지와라 상호작용(a Fujiwhara interaction)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NOAA를 “학계”의 일부가 아니라고 우기면 또 모를까…
그리고 저 글을 작성했던 에드워드 N. 라파포트 박사(Ph.D)는 관련 업계에서 30년 이상 종사한 전문가이며, 미국 국립 허리케인 센터장을 두 번(2007년, 2017년)이나 역임했습니다.
20여년 전에도 미국의 권위자가 언급한 용어를, 그동안 어떤 모종의 계기나 결의가 있어 현재 “학계”에서는 쓰지 않는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미국 국립 기상청에서도 후지와라 효과에서 대해 [별도 웹 페이지]를 만들어 설명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해당 페이지에서 후지와라 효과의 최근 사례로 2017년 허리케인 힐러리/어윈을 들고 있으므로, 학계에서 후지와라 효과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뭐, 많이 양보해서, 적어도 미국에서는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쯤되니 후지와라 효과라는 말은 정작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다… 라는 주장도 다소 의심스럽습니다.
후지와라 효과(藤原の効果)라는 검색어로 일본 야후에서 검색을 해 볼까요?

꾸준히 뉴스에서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올해 6월 10일에도 후지와라 효과를 언급한 기사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태풍이 한꺼번에 두 개나 덤벼드는 사례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과학 용어나 전문 용어가 대중적이지는 않을 것이므로, 뉴스 등에서 그렇게까지 자주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야후 재팬 검색 결과에서 알 수 있듯 후지와라 효과라는 말을 일본에서도 쓰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래는 일본중의원을 지내기도 했던 정치인이자, 후지TV 쪽에서 기상예보사로 일했던 斎藤恭紀(사이토 야스노리)가 2013년 남겼던 트윗입니다.
트위터 링크는 유실되어 원본을 찾을 수는 없지만, 웹 곳곳에 캐시 등으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この台風27号の予報はすごく難しいですよ。だから、メディアは今の段階で「台風26号と進路が似ています」とか言わない方がいいんじゃないかなというのが個人的な感想。あすは27号の東側に台風28号ができそう。2つが干渉しあう藤原効果が出てくるかも。
트위터, “斎藤恭紀 気象予報士(@saitoyasunori)“, 2013년 10월 20일.
일본 기상청에서 “후지와라 효과”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일본 기상청에서 후지와라 효과라는 말은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는 용어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며 시대에 맞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다른 용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 기상청 공식 용어는 아닐지라도 아예 안 쓰는 말은 아니고,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를 살펴보고, 역사적 맥락을 쫓아 용어를 정리하는 등의 작업은 매우 중요합니다.
“후지와라 효과”와 같은 말을 보다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자는 취지에는 반대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학자가 그것도 서울대 교수 씩이나 하고 계시는 분이 근거가 모자란 주장을 하는 걸 보면서 다소 의아해집니다.
이러 이러한 사정이 있으니 더 쉬운 말로 바꾸자는 정도의 주장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테지만, 미국 일본에서 이미 사용중인 말을 “안 쓴다”고 단정해 버리는 과감한(?) 억지는…
다소 당황스럽네요.
이 글을 적고 있는 동안 6호 태풍 카눈과 7호 태풍 란이 한국을 향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장마로 큰 피해가 있었는데 연이은 태풍 접근이라 걱정입니다.
태풍에 피해 입지 않도록 단단히 대비 해야 하겠습니다.